이 건물은 임진왜란때 진주대첩의 주장(主將) 충무공(忠武公) 김시민(金時敏)과 문숙공(文肅公) 김제갑(金悌甲)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하는 사당입니다.
김시민(1554-1592)의 자는 면오(勉吾), 본관은 안동으로 선조 11년(1578) 무과에 급제하고, 선조 24년(1591) 진주판관이 되었습니다. 이듬해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났을 때 진주목사(晋州牧使)로 사천, 고성, 진해에서 적을 격파하고 영남우도병마절도사(嶺南右道兵馬節度使)에 올랐습니다. 그후 진주성 싸움에서 적을 격퇴하다가 전사하였습니다. 선조 37년(1604) 선무공신(宣武功臣) 2등에 추록되고 뒤에 영의정에 추증되었습니다.
김제갑(1525-1592)의 자는 순초(順初), 호는 의재(毅齋), 본관은 안동으로 명종 8년(1553) 별시문과에 급제하고 선조 14년(1581) 충청도관찰사에 올랐습니다. 임진왜란때 원주목사로 관군과 의병을 이끌고 싸우다가 전사하였고, 아들 김시백(金時伯)과 부인 이씨도 순절하였습니다. 뒤에 영의정에 추증되었습니다.
김시민은 진주 충렬사에 제향되었으나 고종 3년(1866) 훼철되어 김제갑의 충열사에 합사하였는데 1976년 묘소를 이곳으로 옮기고 충민사를 세웠습니다.